개발사가 달라? — 워해머 40K 스페이스 마린 시리즈를 만든 두 스튜디오 이야기

게임 패스에서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을 다운받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개발사 표기: Relic Entertainment. 스페이스 마린 2를 만든 Saber Interactive가 아니다. 같은 시리즈인데 개발사가 다르다. 왜일까?

이 질문 하나를 파고들다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스튜디오의 흥망성쇠, 그리고 IP 하나가 여러 회사 손을 거쳐 표류하는 게임 산업의 냉혹한 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1편을 만든 스튜디오: Relic Entertainment

Relic Entertainment는 1997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Alex Garden과 Luke Moloney가 창업했다. 창업 당시 초기 자본금은 캐나다달러 5,000달러. 사무실은 한 바(bar) 위층의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스튜디오가 1999년 내놓은 첫 작품 Homeworld는 업계를 뒤흔들었다. 완전한 3D 공간에서 함대를 지휘하는 우주 RTS로, 출시 첫 해 100개 이상의 상을 휩쓸었고 PC Gamer와 IGN에서 올해의 게임을 수상했다. 당시 Alex Garden의 나이는 23살이었다.

이후 Relic은 RTS 명가로 자리잡는다. 2004년 출시한 워해머 40,000: Dawn of War는 시리즈 전체 700만 장 이상을 판매했고, 2006년의 Company of Heroes는 Metacritic 93점이라는 역대급 평점으로 “역사상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RTS”라는 칭호를 얻었다. CoH 시리즈 전체 누적 판매량은 1,000만 장을 넘어섰다.

그렇게 잘 나가던 Relic이 왜 스페이스 마린 2를 만들지 못했을까?

Relic의 파란만장한 20년

2004년, Garden은 Relic을 THQ에 약 1,020만 달러에 매각하고 회사를 떠난다. 이후 Relic은 THQ 산하에서 Dawn of War 시리즈와 Company of Heroes 시리즈를 이어갔고, 2011년 스페이스 마린 1편을 출시해 출시 첫 분기에만 120만 장을 출하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THQ가 2012년 파산했다. Relic은 2013년 Sega에 2,660만 달러에 매각된다. 이때 비극이 하나 발생하는데, Homeworld IP는 Relic과 함께 팔리지 않았다. Homeworld는 별도 경매에서 Gearbox Software가 사들였다. Relic이 직접 만든 IP를 영영 잃게 된 순간이었다.

Sega 산하에서 Relic은 Company of Heroes 2(2013), Dawn of War III(2017), Age of Empires IV(2021, Microsoft 의뢰), Company of Heroes 3(2023)를 차례로 출시했다. 그러나 Dawn of War III와 CoH3가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고, 2023년 Sega는 Relic에서 121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2024년 3월, Sega는 Relic을 영국 투자사 Emona Capital에 매각했다. 독립 직후 또 40여 명이 추가로 감원됐다. 당시 회사 측은 이 결정이 “갈수록 불안정한 업계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 마린 2를 만들 여력도, 여건도 없었던 것이다.

2편을 만든 스튜디오: Saber Interactive

스페이스 마린 2의 개발사 Saber Interactive는 2001년 창립한 글로벌 개발·퍼블리싱 그룹이다. 아메리카와 유럽에 13개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World War Z, SnowRunner, 닌텐도 스위치용 The Witcher 3 포팅, Halo: The Master Chief Collection 등으로 알려진 스튜디오다. 스페이스 마린 2는 주로 Saber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튜디오가 개발을 주도했고, Focus Entertainment가 퍼블리싱을 맡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출시 5일 만에 200만 명, 한 달 만에 450만 명을 돌파했고, 출시 4개월 만에 600만 장을 판매했다. 2025년 3월에는 스페이스 마린 3 개발이 공식 발표됐다.

두 스튜디오, 두 가지 게임 철학

단순히 개발사가 교체된 것이 아니다. 두 스튜디오의 DNA 자체가 다르다.

Relic은 본질적으로 RTS 스튜디오였다. 스페이스 마린 1편은 Dawn of War 시리즈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팀이 “우리도 한 번 지상에서 직접 싸워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 결과물은 단순했지만 묵직했다 — 처형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리스크-리워드 구조, 4개 무기 슬롯, 단선적이지만 밀도 있는 캠페인. Relic 특유의 “하나의 혁신적인 요소, 나머지는 철저히 다듬기”라는 디자인 철학이 스며든 작품이었다.

Saber는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액션에 강한 스튜디오다. 2편은 그 강점을 그대로 살렸다 — 3인 코옵 캠페인, 6개 Operations 미션, PvP 모드, 클래스 시스템과 장비 파밍, 수천 마리의 티라니드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스케일. 기술적 완성도와 비주얼 연출은 1편을 압도한다. 반면 일부 팬들은 1편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전투 흐름이 2편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희석됐다고 평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나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두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다른 언어로 게임을 만들었다.

1편 vs 2편: 게임 시스템 비교

Space Marine 1 (2011)Space Marine 2 (2024)
개발사Relic EntertainmentSaber Interactive
체력 회복처형으로 즉시 회복처형 + 팀원 부활 시스템
무기 슬롯4개 (무한 탄약 보조 권총 포함)3개 (근접 1 + 원거리 2)
근접 전투단순, 처형 중심패링·막기·언블로커블 공격
회피버튼 한 번더블탭 방식
코옵Exterminatus (웨이브 방어)Operations (3인 전용 미션 6개)
PvP6개 맵, 클래스 성장 시스템3개 맵, 클래스 시스템
주적오크 + 카오스티라니드 + 카오스
한국어 지원❌ 없음✅ 있음

창업자 Alex Garden은 지금 어디에?

홈월드를 만든 사람, 23살에 5,000캐나다달러로 전설적인 스튜디오를 일군 Alex Garden은 이제 게임 업계에 없다.

THQ에 Relic을 매각한 뒤 그는 한국 게임사 Nexon의 북미 퍼블리싱 법인 CEO, Microsoft Xbox Live 총괄 GM, Zynga 스튜디오 총괄 사장을 차례로 거쳤다. 2016년 잠깐 Relic CEO로 복귀했다가, 같은 해 로봇 피자 배달 스타트업 Zume Pizza를 창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AI 에이전트용 신뢰 인프라 스타트업 Mnemom을 운영하고 있다.

홈월드를 만든 사람이 피자 로봇을 거쳐 AI 스타트업에 있다. 게임 산업의 한 시대가 그렇게 끝났다.

마치며

게임 패스에서 스페이스 마린 1편을 다운받으며 봤던 그 짧은 개발사 표기 — Relic Entertainment —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홈월드로 업계를 놀라게 했던 스튜디오, THQ 파산 속에 IP를 잃고 Sega를 거쳐 투자사에 팔리기까지. 시리즈가 다른 스튜디오에 넘어간 것은 단순한 사업적 선택이 아니라, 한 스튜디오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1편을 플레이할 때 무언가 다른 무게감이 느껴진다면, 그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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